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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칼의 노래 _ 김훈

칼의 노래

김훈

 

 

역사소설은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제한적인 상상에 의지해 글을 써 내려감으로서, 지나치게 과거를 왜곡하지 않고 당시 모습을 사실감 있게 엿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난중일기, 선조실록, 징비록, 낭중잡록, 이충무공전서, 유시, 교서, 행장 등의 기록을 오가며 김훈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 보태지니 그 묘사가 영화가 펼쳐지듯 풍부해 특히 좋았다. 

※ 그 상상이 과하면 차라리 판타지다. 

 

같은 시기를 살고 있다고 하여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시대적, 신분적 차이를 고려하더도 전장을 누비는 이순신 장군의 고통과 조정에서 정치를 일삼는 세력의 괴리는 상당했는데, 현대라고 다를까 싶었다. 

 

가령

영남의 여러 배에서 격군과 사부들이 거의 굶어 죽게 되었다. 참혹하여 들을 수가 없다.
1594년 1월 19일 -난중일기-

 

불과 3년 뒤

 

한산도의 장수는 편안히 누워서 무얼 하고 있는가
1597년 1월 23일 -선조실록-

 

이 밖에도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들이나, 전쟁의 참혹함과 약소국의 설움으로 절절히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남쪽 길이 바쁘니, 다만 부르짖으며 울었다. 어서 죽기를 바랐다.

1597년 4월 16일 -난중일기-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 -난중잡록-

 

 

 


 

그리고 무엇 보다 김훈의 아름다운 표현력

김훈의 #자전거여행 을 읽고, 찾아 읽은 책이지만 이 안에도 시적인 표현이 여기저기 보물처럼 숨어 있었다. 

 

  • 우수영의 가을 물빛은 날카로웠다. 먼 산과 섬들의 갈뫼빛 능선이 도드라졌고, 바람의 서슬은 팽팽했다. 

 

  • 이미 멸망을 체험한 자들의 깊은 무기력이 고기 건더기를 넘기는 그들의 목울대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 자연사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 이었다. 

 

  • 아베를 심문할 때 내 마음속에서 울어지지 않던 두 개의 울음이 동시에 울어졌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눈물이 메말라서 겨우 눈을 적셨다. 

 

  • 피에 젖은 겨드랑이 미끈거렸다. 몸에 박힌 적탄은 묵직하고 뻐근했다. .. 적탄의 깊이는 죽음 직전에서 멎어 있었다. 내 몸속의 적탄은, 오래전부터 거기 그렇게 들어와서 살았던 것처럼 무거웠다. 

 

  • 히데요시가 전 일본의 군사력을 휘몰아 직접 군을 지휘하며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풍문 앞에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 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 옥수수의 긴 잎들이 해풍에 쓸리면서 썰물 소리로 서걱거렸다. 시간은 옥수수숲에 발붙이지 못하고 썰물로 빠져나가는 듯...

 

  • 바람이 잠 든 저녁 무렵의 바다는 몽환과도 같았다. 먼 수평선 쪽에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저녁의 빛은 느슨했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퍼지면서 물 속으로 스몄고, 수면을 스치는 잔바람들이 어둠 속으로 불려가면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은 해가 물 위의 빛들을 거두어들였고, 빛들은 해지는 쪽으로 몰려가 소멸했다. 

 

영화 #한산 #명량 과 같이 보면 더욱 몰입감 있게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마흔에읽는손자병법 과 번갈아가며 읽었는데, 이 역시 재미를 배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꼭 한 번 읽어 보길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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